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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8.13 WWYD vs 젠틀맨
  2. 2014.08.08 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3. 2014.08.05 과학이란 무엇인가 - 파인만

WWYD vs 젠틀맨

끄적끄적 2014.08.13 21:49 Posted by 아일레프


약자에 대한 폭력을 다루는 법, 한국과 미국 방송의 차이 글을 통해 WWYD 보게 되었고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감동은 나로 하여금 한국 자막과 함께한 WWYD 모두 찾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프로그램을 모방한 한국의 젠틀맨을 YouTube에서 찾아보았다. PPSS 글처럼 젠틀맨이 편견을 조장한다고 느끼진 못했지만 분명 WWYD 젠틀맨은 차이점이 보였다WWYD으로 감동을 느꼈으나 젠틀맨을 통해선 그럴 없었다. WWYD를 본 뒤에는 생각에 잠깐 잠기기도 했으나 젠틀맨을 본 뒤에는 그딴거 없었다.

 

그랬을까? 같은 형식의 프로그램인데 그런 것일까?

 

그것을 '대화' 유무에서 찾는다. WWYD에서는 대화가 있으나 젠틀맨에서는 대화가 없다. WWYD에서는 시민들의 생각과 철학을 그들의 말로 느낄 있으나 젠틀맨에서는 시민들의 '' 느낄 있을 뿐이다. 그럴까? 미국에선 토론을 접할 일이 한국보다 많기에 그런 것인가? 한국인은 조곤조곤 말을 하는 것보다 화를 많이 내는 민족이라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WWYD이 시민들의 참여만이 아닌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WWYD 배우는 마치 훈련받은 사회자와 같은 대사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말한다. 

 

"제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건가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전 .... 라고 생각해요"

 

결과 WWYD 속에서 시민은 화가 와중에도 자기 생각을 펼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약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논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주제에 함께 참여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배우를 꾸짖는 것뿐 아니라 조심스레 설득하는 목소리를 WWYD 통해 들을 있고, 또한 그들에게 설득되고 감동을 느낄 기회를 얻는다.

 

WWYD 달리 젠틀맨 속의 배우는 시민의 생각을 묻는 대신 한껏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시민들의 화를 돋운다.

 

"내가 못된 사람이란 거에요?!"

"내가 잘못한 거에요?!"

 

결국 시민과 젠틀맨을 보는 우리가 얻을 있는 것은 '' 내거나 시민과 같이 '어이없는 표정' 지을 기회 뿐이다.

 

젠틀맨은 WWYD 같이 만들면 우리 사회에 생산적인 담론을 끄집어낼 있는 좋은 통로가 있다. 우리 사회에도 미국의 인종차별, 동성애 등과 비견할 만한 충분한 이슈들이 넘친다. 그러니까, 결론은, 모방하려면 제대로 모방하자. 채널 A 에게 이건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그래도 애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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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즐거운 책 이야기 2014.08.08 20:59 Posted by 아일레프

뼈의 소리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김완 옮김
애니북스 2006.08.16
펑점

  생애 최고의 만화 '기생수' 작가 - 이와아키 히토시의 초기 단편집 '뼈의 소리' 읽었다짧은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은  개의 단편을 제외하면 일관되게 '인간의 조건' 관해 묻고 있다.

 

연민을 느끼지 않는 인간을 인간이라   있는가?

슬픔을 느끼지 않고눈물을 흘릴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있는가?

 

 대상이 타자라면 그를 싸이코패스소시오패스라고 말하며 넘길  있겠지만만약 스스로가 그렇게 감정이 말소된 사람이라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있을까?

 

 질문에 관심이 있다면 히토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질문에 대한 그의 응답이 무엇인지  기울여 보자거친 그림체와우울한 서사가 책을 지배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크게 뭉클해잠시나마 요동침을 느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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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인가 - 파인만

즐거운 책 이야기 2014.08.05 18:36 Posted by 아일레프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10점

 















http://illef.tistory.com2014-08-05T09:35:400.31010

저명한 파인만이 쓴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얇은 책이고, 파인만의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기에 한장 한장이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하지만 강연을 책으로 옮겼기 때문에 간혹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과 그의 논거를 뒷받침 하는 예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나와 얇은 책을 더 얇게 만들었다는 점은 날 아쉽게 했다.  

자, 과학이란 무엇인가? 파인만은 이 과학을 3가지 항목으로 분류한다. 새로운 사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론과 그때의 사고의 흐름을 과학이라 볼 수 있으며 둘째로 관찰을 바탕으로 특정 규칙을 끄집어내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 규칙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는 것. 이 3가지가 그가 생각하는 과학이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첫 번째 사항이다. 새로운 사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론, 과학적 규칙을 이끌어 내기 위한 사고의 흐름, 그 자체가 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인만은 이것에 대해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한다. 이것은 파악되고 설명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과학자에게 법칙이란 다시 반박당하고 다시 설명되어야 할 사실에 불과하다. 파인만은 이것을 과학의 불확실성이라 설명한다. 그렇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규칙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과학의 두 번째 성질은 관찰한 사실을 바탕으로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것을 나타내더라도 좋은 규칙과 더 좋은 규칙이 있다. 누군가 태양을 관찰했다고 해보자. 그리고 이런 규칙을 만들었다. "태양은 지구보다 크다." 이것은 훌륭한 규칙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자. "태양의 크기는 지구보다 크며 그 크기의 차는 109배이다." 어떤가? 이는 전자보다 더욱 훌륭한 규칙이다. 왜냐면 첫째로, 이것은 이전 규칙보다 더 명확히 태양이 지구보다 얼마나 큰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것은 전자보다 더 반박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규칙은 태양이 지구보다 크기가 같거나 작다는 사실이 발견될 때만 반박된다. 하지만 두번째 규칙은 "그 크기의 차이가 110배이다"라는 반박에도 열려 있다. 이것은 놀랍도록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명확하고 정밀한 규칙일수록 반박당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같은 관찰에 대한 규칙의 우열의 재는 가늠자이다. 

규칙이 반박되는 것은 언제인가? 그것은 규칙의 예외가 발견될 때이다. 이미 정한 규칙에 예외 상황이 생겼을 때 과학자는 이 예외 상황을 포괄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이 예외가 발견될 때마다 규칙이 더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단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천동설을 예로 들어보자. 천동설이 가능하게 하도록,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리기 위해 천동설은 수많은 법칙으로 둘러싸여 있었다.(아닌 것을 사실로 꾸며내려면 정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하지만 지동설이 나오고 그 규칙은 몇 배로 감소했다. 그리고 케플러가 행성이 타원으로 돈다는 아이디어를 꺼내자 그 규칙은 또 다시 몇 배 감소했다. 이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많은 예외를 포함하는 새롭고도 정교한 규칙이 오히려 이전 규칙보다 더 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하다. (케플러가 얼마나 기뻐했을지 그 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프로그램을 만든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의 요구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프로그램은 지저분해지고 점점 크기를 늘려간다. 그러나 언젠가 마음을 먹고 처음부터 다시! 라는 마음을 먹고 모든 요구를 관통할 수 있게 규칙을 정립하고 프로그램의 구조를 다시 잡는 순간, 프로그램은 작아지면서 오히려 모든 요구를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게 된다. 단조로움이 오히려 복잡함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다. 

파인만은 발견된 규칙을 응용해 새로운 것을 발명할 수 있게끔 하는 기술 역시 과학이라 불렀다. 여기선 기술, 그리고 과학 그 자체보다 다른 부분의 이슈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학자의 책임이다. 신기한 일이지만 과학자가 발견하고 발명한 그것은 선과 악의 중립지대에 있다. 파인만은 과학이 발명하는 것은 결코 선과 악 중 하나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살짝 비켜선다. (파인만은 핵폭탄 프로젝트,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고개가 갸웃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만든 발명품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었음을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조금 놀랍다. 난 과학자는 어떤것을 발명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그리고 만약 어떤 방법으로 쓰여선 안 되는 지를 명확히 생각하고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몇 과학자들은 기술 자체는 더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로 갈지에 대해선 무지한 '척'한다. 이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마쳐보자. 파인만이 살던 시대보다 지금은 더욱 과학의 시대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대부분 과학이 가져다준 진보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과학이 만든 기술이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태도는 과학적이지 않다. 우리는 빨리 믿기 좋아하고 이미 믿은 그것의 예외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가졌던 믿음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우린 과학적 시대에 비과학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사실이 언제든지 반박 가능해질 수 있음을 깊이 알자. 성숙과 더 많은 이해는 늘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것한테서 오니까. 그렇게 인류는 진보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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