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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18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

즐거운 책 이야기 2011.01.18 22:59 Posted by 아일레프

어젠 11시에 누웠다. 평소 취침시간보다 약간 이른 시간이었지만 월요일의 묘한 기운이 날 몹시 피곤하게 했기 때문에 어서 잠에 들고 싶었다. 잠을 좀 더 빨리 부르려고 4분의 1쯤 본 "파이 이야기"책을 꺼내 읽었다. 엄청난 실수였다. 주인공이 호랑이와 함께 표류하기 전에 책 넘기는 짓을 멈췄어야했다. 몸은 피곤해 졸려 죽겠는데 이야기의 흡입력이 너무 강해 20분만 더보자, 10분만 더보자 하다가 결국 마지막을 본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소설의 참맛은 역시 서사다.

이 소설의 '1'을 여기 둔다. (다시 읽으니 코 끝이 찡하다.)

 

1

아픔을 겪은 후 난 슬프고 우울했다.

공부와, 마음을 다해 꾸준히 행한 종교 의례 덕분에 차츰 삶을 되찾았다. 나는 남들이 이상한 종교의식이라고 여길 만한 예배를 계속 올려왔다. 고등학교에서 일 년을 보낸 후, 토론토 대학에 진학해서 두 가지를 공부했다. 전공은 종교학과 동물학. 종교학 졸업논문 주제는, 사페드 출신으로 16세기의 위대한 카발라 사상가였던 아이삭 루리아의 우주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동물학 논문은 세발가락나무늘보의 갑상선에 대한 기능적인 분석이었다. 연구 대상으로 나무늘보를 선택한 것은 이 동물의 차분하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태도가 갈가리 찢긴 내 자신을 위로해주어서였다.

나무늘보는 발가락이 둘인 종과 셋인 종이 있다. 뒷발은 모두 발가락이 셋이므로, 앞발에 따라 종을 나눈다. 어느 여름, 무더운 브라질 밀림에서 발가락 셋인 나무늘보를 연구하는 행운을 누렸다. 나무늘보는 대단히 흥미로운 생물이다. 유일한 습관이 게으름 피우기다. 하루 평균 스무 시간씩 자거나 휴식한다. 우리 연구팀은 세발가락나무늘보의 수면습관을 실험했다. 초저녁에 잠든 다섯 마리의 머리 위에 물이 담긴 빨간 플라스틱 접시를 올려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접시는 그대로 있고 물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나무늘보는 해질 무렵에 가장 분주하다. '분주'하다고는 하지만, 좀 그렇다는 것이지 아주 바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동물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서, 시속 400미터로 움직인다. 땅에서는 시속 250미터로 나무에 기어오른다. 이것도 다급할 때의 속도다. 다급한 치타보다 440배 느린 속도다. 급한 일이 없으면 한 시간에 4, 5미터 정도만 움직이는 동물이 바로 나무늘보다.

세발가락나무늘보는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동물학자 비브는 보통의 둔감함을 2점, 극도의 예민함을 10점으로 나누고 나무늘보의 미각, 촉각, 시각, 청각에 2점을 주었고, 후각에는 3점을 주었다. 숲에서 잠든 세발가락나무늘보는 두세 차례 쿡쿡 찌르면 깨어난다. 졸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지만 찌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한다. 모든 걸 흐릿하게 보는 나무늘보가 왜 그렇게 둘러보는지는 불확실하다. 청력의 경우, 안 들린다기보다는 소리에 관심이 없다. 비브는 자거나 음식을 먹는 나무늘보 옆에서 총을 쏘아도 별 반응이 없다고 보고했다. 후각이 약간 낫긴 하지만 과대평가해선 안된다. 나무늘보가 코를 킁킁거려 썩은 가지를 피할 수 있다고 하지만 동물학자 벌록은 나무늘보가 썩은 가지에 매달렸다가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런 동물이 어떻게 생존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놈들은 너무 느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잠과 게으름 덕분에 재규어와 스라소니, 큰수리, 아나콘다에게 먹히지 않는다. 나무늘보의 털에는 건기에 갈색 식물이, 우기에는 초록색 식물이 서식한다. 그래서 나무늘보는 주변의 이끼나 나뭇잎과 뒤섞여, 흰개미나 다람쥐의 둥지나 나무의 일부로 보인다.

세발가락나무늘보는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평화로운 초식 동물로 살아간다. 터를러는 "나무늘보의 입에는 언제나 맘씨 좋은 미소가 걸려 있다"고 했다. 내 눈으로 직접 그 미소를 본 적이 있다. 난 동물에게 인간의 특징과 감정을 투사하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브라질 밀림에서 고개를 들다가 쉬고 있는 나무늘보를 볼 때면, 물구나무서서 명상하는 요가 수행자나 기도에 몰두한 은자 앞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과학적인 접근법으로는 닿을 수 없는 상상력 넘치는 삶을 사는 현자 앞에 있는 느낌이랄까.

가끔 내 전공은 뒤섞여버렸다. 종교학을 전공하는 친구들ㅡ 위가 어디인지 모르고, 엉터리 같은 이성의 노예가 되어 갈피를 못 잡는 불가지론자들 ㅡ 을 보면 세발가락나무늘보가 떠올랐다. 생명의 기적을 보여주는 세발가락나무늘보를 보면 신이 떠올랐다.

과학도들과는 아무 마찰도 없었다. 그들은 다정하고, 무신론자이며, 열심히 공부하며, 술고래들이다. 과학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는 섹스와 체스, 야구만 머리에 있는 친구들이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다. 세인트 미카엘 칼리지 시절 사 년 내내 우등생이었다. 동물학과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받았다. 종교학과에서 상을 못 받은 것은 학과에서 주는 상이 없었기 때문이다.(하긴 종교학 부문에서 어찌 인간이 상을 줄 수 있을까). 토론토 대학 학부생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은 주지사상이다. 캐나다에서 잘나가는 명사 중에는 그 주지사상 수상자들이 많다. 체격이 다부지고 지나치게 활달한 기질을 가진 그 백인 남학생만 아니었다면, 내가 상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그때 받은 모멸감에 지금도 자존심이 상한다. 살면서 고통을 많이 겪으면, 더해가는 아픔은 참기 힘들기도 하지만 사소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은 유럽 그림에 나오는 해골과 비슷하다. 옆에는 늘 씩 웃는 해골이 있어, 야망의 아둔함을 일깨워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린다. '사람을 잘못 골랐어. 넌 삶을 믿지 않을지 몰라도 난 죽음을 안 믿거든. 저리 가!' 해골은 낄낄대면서 가까이 다가오지만, 난 놀라지 않는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ㅡ 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우울은 구름의 그림자를 지나칠 뿐이고. 그 백인 남학생은 '로즈장학위원회'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난 그를 좋아한다. 그가 옥스퍼드에서 풍요로운 경험을 누리길. 부의 여신인 라크시미가 어느 날 내게도 행운을 듬뿍 내려준다면, 옥스퍼드는 다섯번째로 가고 싶은 도시다. 그보다는 먼저 메카, 바라나시, 예루살렘, 파리에 가보고 싶다.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저 넥타이가 올가미고, 거꾸로이긴 해도 조심하지 않으면 목이 졸릴 거라는 것밖에.

캐나다를 사랑한다. 인도의 열기와 음식, 벽을 타고 오르는 도마뱀, 은막 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거리를 거니는 소, 까악대는 까마귀 떼, 크리켓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립지만, 캐나다를 사랑한다. 캐나다는 너무 추워 정신을 차리기 힘든 대단한 곳이고, 헤어스타일이 제멋대로인 선량하고 지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어쨌거나 폰디체리에는 내 마음이 젖어들 만한 게 없다.

리처드 파커는 쭉 나와 함께 있었다. 그를 잊어본 적이 없다. 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보고 싶다. 지금도 꿈에서 그를 본다. 주로 악몽이지만, 사랑이 얼룩진 악몽이다. 사람의 묘한 심리다. 어떻게 그렇게 불쑥 날 버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작별인사도 없이,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훌쩍 가버렸을까? 도끼로 쪼개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멕시코 병원의 의료진은 믿지 못할 정도로 내게 친절했다.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암 환자나 교통사고 환자들이 내 소문을 듣고는 휠체어를 밀며 모여들었다. 보호자들까지 모여들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 하는데도. 그들은 미소를 보내고, 손을 잡고, 머릴를 쓰다듬어주었다. 내 침대에 음식과 옷가리를 놓아주기도 했다. 그들 때문에 난 참지 못하고 웃음과 울음을 터뜨렸다.

이틀쯤 지나자 설 수 있었다. 어지럽고 메스껍고 힘이 없었짐나, 두어 발 뗄 수 있었다. 빈혈에다, 나트륨 수치가 너무 높고 칼슘 수치는 너무 낮다는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다. 몸에 액체가 고여서 다리가 퉁퉁 부었다. 몸에 코끼리 다리를 붙여놓은 것 같았다. 소변은 샛노란 색이었다가 점차 갈색으로 변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고, 끈까지는 못 묶어도 구드를 신을 수는 있었다. 어깨와 등에 상처가 남아 있었지만 피부는 나았다.

처음 수도를 틀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살이 쏟아지는 데 놀라, 몸이 흐물흐물해져 털썩 주저앉았다. 간호사의 품에서 기절해버렸다.

캐나다에서 처음 인도 식당에 갔을 때 나는 손으로 밥을 먹었다. 웨이터가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 "지금 막 배에서 내렸나보군요?"라고 했다. 나는 허옇게 질렸다. 조금 전까지도 음식을 음미하는 미뢰였던 손가락이, 웨이터의 눈길에 더러운 게 되어버렸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죄인처럼 손가락을 얼어 붙었다. 감히 손가락을 쭉쭉 빨 수가 없었다. 난 죄지은 듯 냅킨에 손을 닦았다. 웨이터는 그런 말이 내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몰랐다. 살에 못을 치는 것 같았다.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런 도구는 써본 적이 없었다. 손이 떨렸다. 삼바가 맛이 없어졌다.

 

ㅡ 와 이 정도 길이의 글을 옮겨 쓴 적은 처음이다. ㅡ 1에 해당하는 이 글은 나무늘보 이야기로 쿡쿡 웃게 만들더니(나무늘보 대박) 여기 저기 왔다 갔다하는 이야기로 날 혼란스럽게 했다. 갑자기 "리차드 파커"란 이름이 나오더니 병원으로 공간이 옮겨진다. 이야기를 다 읽은 나는 이제야 이 첫 이야기를 읽고 그의 마음을 헤아린다. 리차드 파커는 나빳다.

모니터 안에서 인도와 한국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 파텔도 저 인도 사람과 같은 생김새일까? 경기는 지금 3:1이다.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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