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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30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수난 - 다시 못 박힌 예수 (2)
수난 1 - 10점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창식 옮김/열린책들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보통 책을 읽을 때 문장에 줄을 많이 긋고, 많은 메모를 하는 편이지만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도 이 책은 깨끗했다. 명문과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서우리만치 강력한 소설의 흡입력이 펜을 들 시간을 감히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잔차키스는 예수의 시대에 벌어진 사건이 2000년 전의 것만이 아님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책은 오늘날 또 다시 벌어지고 있는 그 예수의 시대 앞에 나를 서게 한다. 이 곳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일까? 우리는 과연 진실로 성장해 죄 없는 이의 못박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질서의 수호인가 사랑과 정의인가

난 이 화두가 오늘날에만 존재하는 것인양 착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것은 꽤나 오래된 주제였나보다. 그리고 사랑, 정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지금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랑과 정의라는 주제가 바로 사회 주도층에서 주도해 만들고 심어놓은 생각이라는 점에 있다. 그들의 제국에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교만과 시기 질투 보다는 사랑과 관용, 정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배층들이 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는 사랑과 정의이다. 그저 고만 고만한 사랑과 정의를 묵상해야 이 땅에서 그럭저럭 칭송받으며 부와 명예를 지킬 수 있다. 포티스 사제가 나타나기전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이 그랬다. 그 정도의 사랑과 정의만으로 세상은 평화롭게 흘러갔고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티스 사제가 이끄는 피난민들이 그들에게 나타나자 상황이 조금 틀려졌다. 그들은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 사랑과 정의의 메시지의 큰 목소리는 그들에게 행동의 불을 지필만한 동인이 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어느 누가 나서서 맘 속에서 불타려하는 작은 불꽃을 잠재워주기를 빌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타락한 사제와 탐욕스러운 부자의 편에 자기도 모르게 서고야 만다.

 

이 세상은 네개의 기둥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믿음과 조국과 명예, 다음으로 네 번째 위대한 기둥이 재산이다. 그것에 손대지 마라! 신은 당신의 숨겨진 법에 따라 부를 분배하신다. 신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는 별개이다. 신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만들었다. 질서를 방해하는 그에게 화 있으리라. 그는 신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그레고리 사제의 목소리

 

그나마 그레고리 사제가 솔직해서 저 꾸밈없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다행이다. 이 순간 그는 신의 제자가 아니다. 이 세상의 수호자일 뿐. 신의 거룩한 말씀, 그가 밑고 따르는 예수의 거룩한 메시지는 오직 믿음, 조국, 명예 그리고 재산을 지킬 수 있을 경우에만 유효하다고 하는 그의 말은 요즘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려와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세상의 질서에 거슬러 교리, 경전, 율법 따위가 아닌 순수한 예수의 사랑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릴 만한 그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과 투쟁하며 삶의 모순을 지우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의 삶을 어느새 닮아버려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마놀리오스, 베드로 야나코스, 오오, 집정관의 아들이라는 명예와 재산을 내팽겨친 미켈리스. 그들은 타락한 세상의 질서에 맞서 거룩히 투쟁한다. 볼세비키라는 누명을 덮어 써도(오늘날 좌파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폭동자란 어이없는 말을 들어도 이 세상에 하늘의 법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승리가 보이지 않는 투쟁을 계속해간다.

 

<왜 이곳의 삶 때문에 분투해야 하는가? 이 세상이 나에게 중요하기나 한가? 난 천국에서 유배된 자이니 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 하지만 알았어. 누구든 지상에서 먼저 승리하지 못한다면 하늘로 갈 수 없고, 열정과 인내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 지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고. 천국으로 날아가고 싶은 인간에게 도약대는 오직 땅 뿐이다.포티스 사제의 목소리

 

그러나

그러나 혁명은 패했다. 이 땅에서의 안녕과 배를 채워줄 부를 원하는 마음이 더 강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는 또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또 다른 예수를 못 박았다. 2000년 전에만 예수가 못박힌 것이 아니다. 소설의 무대에서 또다시 예수는 못박힘 당했다. 오늘날? 또다른 예수가 못박히는 광경을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다

...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진실로 성장해 이 못박는 손을 거둘 수 있을 것인까? 하늘의 법은 언제쯤 이 땅에 완전히 이루어져 더 이상 패배를 경험하지 않게 될 것인가. 과연 언제쯤 승리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즘 리코브리시 마을을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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