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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19 낙타의 삶을 벗어나 - 재현이란 무엇인가

재현이란 무엇인가 - 10점
채운 지음/그린비

좋은 하나를 소개하려합니다. 그린비 출판사의 개념어 총서 시리즈 1권인 "재현이란 무엇인가" 책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사고를 많이 접해본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책으로 다가올 있겠지만 제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전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떨림을 느꼇지만워낙 책이 어려워 떨림이 무엇에서 시작되는지 함부로 말하기 어려웠는데 책은 쉽다는 미덕을 갖추고 있어 지금 내게 맞는 책이 되어주었습니다

, '재현'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재현적 사고'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뭔지 말하기 전에 1 전쯤 회사 사장님과 나눈 대화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지?"

"글쎄요, ... 아마도 제가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것 같아요."

"네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그다지 이쁘지는 않아도 되지만 , 피부가 깨끗했으면 좋겠고,  웃는 모습이 이뻣으면 좋겠고, 자기 주관이 뚜렸했으면 좋겠고, 너무 현실적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절 주절"

"그래?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네가 그리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일생 한명은 만날 있다던데요?"

"그건 영화니까. 소설이니까. 네가 마음 속에 그린 이른바 이상형이란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 '로보트'인지도 몰라. 마음 속에 네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나 하나 붙여 로보트를 만들고 로보트를 사랑하는거지. 그런데 로보트란 결국 자신이 그린 것이고, 그것으로 시작된 사랑은 타인에게로 깊숙히 뻗어나가기 어려워. 타인에게로 향해야할 사랑이 자신에게로 치우치는 거지. 분명한 것은 로보트와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야. 로보트와 닮은 사람을 만났다 해도 멀지 않아 네가 그린 형에서 벗어난 모습을 찾아낼 것이고 그것이 마음에 짐을 수도 있지."

"..."

"때문에 중요한 것은 마음 속에 이미 자리잡은 '이상형' 모습을 하나 하나 지워나가는 거라 생각해. 그러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있을거야."

 

좋은 조언이죠? 재현적 사고란 사장님게서 꾸짖은 생각의 모습입니다. 사랑할 사람의 상을 미리 마음에 그려놓고 그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 넓게 보면 마음 속에 어떤 완벽한 상을 그려놓고 그것 대로 살아가려하는 . 이것이 재현적 사고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냐면 하나 하나 소중한 삶의 방향을 '이래야 한다. 이러면 안된다'라고 성급히 규정 짖고 삶의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경계선을 긋 때문입니다. 문제되는 사실은 '무엇을 재현한다.?'라는 문장에서 목적어인 '무엇' 자기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쩌면 사회와 종교 또는 미디어로 부터 받은 억압과 교육의 찌꺼기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꿈꾸는 사랑의 모습은 온전히 자신이 만든 것입니까? 혹시 아름 다운 영화나 소설이나 종교의 경전을 보고 "저게 바른 사랑이야, 사랑은 저래야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요? 더욱 문제되는 것은 영화, 소설, 종교의 경전이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 현실의 자기 모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지 않아도 의심을 하게 것이고 혹은 그것으로 죄의식을 느낄 지도 모릅니다. 속으로 말하겠죠. "이건 내가 꿈꾸는(사실 남이 그려줬을지도 모르는) 삶의 모습이 아니야." " 사랑은 이러지? 사랑은 온유하고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는 것이라 했는데 이러지?" 이런 식의 사고는 삶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장애물이 됩니다. 낙타의 삶이죠

 

"인내력 있는 정신은 이와 같은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짐을 싣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정신의 사막을 달린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한가지. 재현적 사고는 다른 이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게 합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그려놓은 완성된 삶의 잣대로 자신을 포함한 개인 개인을 줄세우는 것이죠. 그후엔 자기보다 뒤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우월감을 느낄 것이고 자신보다 앞서있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을 느낄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그려놓은 완성된 삶의 모습을 한번 지워볼까요? 줄세워진 사람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져 우주의 별과 같이 개인 개인으로서 아름답지 않습니까

 

지금 제겐 어울리지도 않는 말들을 너무 많이 했네요. 애교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이상 나름대로의 감상을 말하는 것은 그만두고 좋은 책의 머릿말의 일부를 여기 옮깁니다.

 

 

. 머릿말_ 디렉현,

인어공주의 비극

어린 시절에 한때나마 인어공주의 비극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던가... 모르겠다. 가지 분명한 , 도무지 그녀의 사랑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어공주의 비극은 왕자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왕자가 잘못했나. 인어공주는 사랑의 힘을 삶의 힘으로 전환시키지 않았으며(인어공주가 능동적으로 선택할 있는 유일한 행위가 '죽거나 죽이거나'라니!), 자신의 사랑을 '행위' 책임지지 않았으며(언어를 스스로 포기해 놓고 대체 생면부지의 왕자와 어떻게 소통을 한단 말인가! 설마 미모로?), 자신이 만든 사랑의 상을 현실에 투사해 놓고는 망상 속에서 허우적거렸다(내가 인간이 되면 왕자님도 사랑하지 않을까? 맙소사!) 됐지만, 인어공주의 비극은 스스로가 자초한 거다. 그게 사랑의 본질이든 뭐든, 아무튼 허무한 비극에 도무지 공감할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위의 포뇨' 인어공주의 비극을 완벽하게 전복한다. '물고기' 포뇨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포뇨의 인간-되기는 마법이나 사랑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의 모험에서 시작된 . 파도에 휩쓸려 포뇨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소스케에게 발견된다.

소스케는 속에서 파닥거리는 포뇨를 구해 주고, 포뇨는 병을 깨다가 손을 베인 소스케의 상처를 햝아 그의 상처를 치유해 준다. 이보다 가슴 찡한 만남이 있을까.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만남.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수몰된 세계를 항해하고, 어두운 터널을 함께 통과하는 사랑. 포뇨와 소스케는 사랑에 대한 어떤 선험적 상도 없는 상태에서 모험을 통해 사랑을 배워가고 구성해간다. 소스케의 마음이 변하면 포뇨 역시 물거품으로 변해야한다. 하지만 포뇨 엄마의 말처럼, 그러면 어떠한가. "우린 원래 물거품에서 태어났는데요, !"

"당신은 포뇨가 예전에 물고기였다는 알고 있나요?"

"."

"포뇨는 당신의 피를 먹고 인어가 됐어요."

"그랬구나. 아줌마! 포뇨가 손에 상처를 낫게 해줬어요. 그래서 인어가 거예요!"

"그래요! 그런데 당신은 포뇨가 인어라도 상관없나요?"

", 물고기 포뇨도, 인어 포뇨도, 인간 포뇨도 전부 좋아해요."

인간, 물고기, 인어 따위의 규정을 벗어난 범우주적 사랑! 다섯 살짜리 꼬마들은 쑥쑥 자랄 것이고 변할 것이고 죽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 또한 성장하고 변화하고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랑의 비극이 수는 없다. 그게 비극이라면 자체가 영원한 비극일 .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어공주의 비극에 맞서서, 물에 잠긴 묵시론적 세계 속에서 사랑을 구성하는 자들의 사랑을 사요한다. 그들이 -래의 세계를 구성할 것이고, 그들의 사랑이 세계에 다른 풍경을 선물할 것이다. 사랑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어떤 모델도 없이 사랑하라!

 

독화살

...

재현은 "삶의 운동에 대항하여, 삶의 운동을 발명하는 즐겁고 다양한 방법에 대항하여 파괴적으로 반응" 한다는 점에서 파시즘을 닮아 있다. 일말의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 파시즘처럼 재현 역시 동일성의 체계로부터 달아나는 모든 힘들에 대해 극도로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한다. 재현의 세계에서는 체계에 구멍을 내는 , 동일성에 가해지는 작은 흠집 하나도 죄악이다. 일차적인 것은 중심, 규범, 척도요, 낯선 , 지류, 차이는 예외적인 것으로서만 허용된다. 파시즘은 정치 형태가 아니라 욕마으이 형태, 사유의 형태다. 완전한 사랑, 완전한 , 정합적인 세계를 꿈꾸는가? 어쩌면 당신은 파시스트일지도

 

걷기

...

재현은 고체 상태의 세계를 꿈꾼다. 각이 들어맞는 단단한 육면체들의 세계. 걸으면서, 걸음과 함께 펼쳐지는 여러길들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 어딜 가든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세계. 재현은 주어진 구조에서 출발한다. 표준, 평균치, 원점에서. 구조 밖으로 이탈하는 , 기원 없이 시작하는 , 정처 없는 산책을 용납하지 않는다. 위에서 벌어지는 우연한 만남과 사건을, 포뇨의 대책 없고 목적 없는 사랑을, 거위의 위에의 비행을

주어진 안에서 평균적인 욕막을 갖고 다수적 개념을 재현하기를 강요하는 재현의 세계에는 길이 별로 없다. 많은 이들이 걷는 개의 뻔한 말고는. 하지만 사유와 , 그리고 예술은 언제나 길을 잃음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디렉션 . 집으로 가는 , 없음, 막다른 골목, 혹은 여러 갈래 . 위에서, 알몸인 채로, 재현과의 전투를 시작해보자

 

 

아ㅡ 좋다. 좋은 글이다. 고마워요, 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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