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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종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4.07 착하고 온순한 나를 화나게 만든 책,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 (4)

기대감을 가지고 구입한 "근대문학의 종언 - 가라타니 고진" 이었는데, 이것이 내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지는 미처 몰랐다. 실망감의 원인이 그의 주장이나 논지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글을 지독히 못쓰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더 날 놀라게 한다. 고작 10페이지 읽으면서도 시험에 시달려야 했다. "고진이란 사람은 유명한데, 이 사람이 글을 못쓸리가 없어. 내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일꺼야" 하지만 난 시험에 들었다. 이 사람은 글을 못쓰는 사람이다! 


아래에 "고진이 글을 못쓰는 사람이다" 라는 명제의 근거를 몇가지 제시한다. 누군가 이것에 대해 "고진이 글을 못쓰는게 아니라 이해력이 모자란 것"이라고 근거를 들어 말해줬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아래의 인용은 모두 근대문학의 종언 중에서 "3장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온것이다. )


프랑스에서는 사르트르의 존재가 너무 큰 나머지 다음 사람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때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르트르를 비판하거나 조소하거나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들뢰즈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실은 모두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사르트르는 그에 대한 비판으로서 이루어진 것을 전부 선취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데리다는 '현전성의 철학'을 비판했지만, 사르트르가 '상상력'에 대해 쓴 것이 그것입니다. 또 앙티로망 역시 원래 사르트르가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구토'는 최초의 앙티로망이었습니다. p45, 강조는 인용자

- 강조된 문장을 보자. "사르트르가 그에 대한 비판으로서 이루어진 것을 전부 선취하고 있었다"라고 했을 때, 도대체 비판으로서 이루어진 것이 뭐란 말인가? 저 문장 뒤에 나온 고진의 예시를 보면 데리다가 '현전성의 철학'을 비판했는데, 사르트르가 상상력에 대해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르트르가 상상력에 대해 쓴 것이 데리다의 현전성의 철학 비판으로 이루어진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선취(이미 얻다)'란 단어가 도대체 왜 붙는 것인가? 강조된 문장은 고진은 자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성의 없게 함축해 문장을 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는 글을 못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러나 내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정말 실감한 것은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충격이었습니다. 1990년대에 나는 한일작가회의에 참가하거나 한국의 문학자와 사귈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이렇게 될지라도 한국만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p48, 강조는 인용자

- 맙소사, 고진은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느낌의 근거가 한일작가회의에 참가하거나 한국의 문학자와 사귈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란다. 아니, 장난하나? 한국의 문학자와 사귀면서 이러 이러한 정보를 얻었기에 어떠한 느낌을 받았다고 써야한다. "사귈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라는 것 자체가 저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다니.


... 그는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언제부턴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 그런 것이 문학이라면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동감을 표했습니다.

- 위 문장은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읽힌다. 쉼표(,) 의 쓰임이 굉장히 이상하다. 고진은 마치 '그'가 말하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 하다 그런데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부분은 그대로 옮겨 적은것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 그런 것이 문학이라면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읽힌다. 이것은 문장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이다. 고진은 글을 못쓴다.


문학의 지위가 높아 지는 것과 문학이 도덕적 과제를 짊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다면, 문학은 그저 오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좋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자,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나는 애당초 문학에서 무리하게 윤리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말해 문학보다 더 큰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근대문학을 만든 소설이라는 형식은 역사적인 것이어서, 이미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p53, 강조는 인용자

- 장난하나? 앞 문장은 문학이 단순히 오락화 되는 것을 비판해 놓고서, "나는 애당초 문학에서 무리하게 윤리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니. 뭐하자는 건가? 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말하지 않나? 난 이부분에서 책 읽기를 접었다. 빨간줄 그은 곳이 많아(좋은 표현에 그은 것이 아니다. 엉터리 문장에 그엇다.) 팔수가 없다는 사실이 날 슬프게 한다.


누군가 말해줬으면 한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독해하는 것이 올바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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