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10점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부키



   Intro

존던이 그날 말했다.

--- 바닷물에 바닷가의 모래가 쓸려가면 대륙의 크기는 그만큼 작아집니다. 오늘 한명이 죽으면 인류의 크기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합니다. 나는 인류속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묻지 마세요.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립니다.

그것은 예전의 경제학 수업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칠판에 다음과 같은 표를 그린후에 다음 중 하나의 의사 선택을 하라고 했다.


  1. 의사 선택의 표

  

선택 1

선택 2

선택 3

선택 4

A 집단

4

10

6

7

B 집단

4

2

4

3

 위 표에서 각 숫자는 개개의 선택을 했을 때 각 집단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수치화 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약 100명중 90%에 가까운 사람이 "선택 1"에 표를 던졌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표를 통해서 하나의 선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하지 말아야 하는 선택을 찾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선택은 '1'번이다."

A와 B집단의 각 이득을 생각해 보았을 때 선택 1은 당연히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B집단이 손해 보지 않고도 A집단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선택 3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택 4나 선택 2를 선택하는 것은 B에게 손해를 강요하는 일이기에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1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비 합리적인 것임을 그는 꼬집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속에 "평등"을 원하는 인간의 마음이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가르쳐 주었다. 마음속의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1. 비교우위론과 자유무역

    한미 FTA 반대 시위 소식이 속속 들려왔다. 학교에는 FTA를 반대하는 유명 인사가 강의를 했다. 이런 일들은 차츰 번져가 학교 내에서 FTA를 찬성하는 무리는 "악"으로 단정시키는 거대한 흐름이 되기도 했다. 바로 그 적절한 시점에 그에게 비교 우위론과 그로 인한 자유무역의 이점에 대해 배웠다. 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신 내에서의 비교우위로 남과 자유무역을 했을 때 나와 너가 모두 최고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그 꿈같은 결과. 그래프와 수식아래 정의된 깔끔하고 명료한 사실 아래 난 무릎 꿇어야 했다.

    "스크린 쿼터를 예로 들어볼까? 잘봐, 너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외화가 있어. 그런데 영화가 모두 매진되서 넌 그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되었어. 스크린 쿼터가 없었더라면 몇 개의 상영관이 더 열릴 수 있었을 거고, 너희들은 영화를 볼 수 있었을 꺼야. 따라서 너희들에게 손해지. 그리고 영화관도 마찬가지야. 스크린 쿼터 때문에 재미없는 한국영화를 강제로 올리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이득을 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득을 본건 누구지?"

    FTA를 반대하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기 말에는 80%가량 찬성하는 결과를 낳았고 20%에 해당하는 학생 중 자신이 왜 반대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크린 쿼터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소비자들의 권리를 우롱하는 파렴치한 기득권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눈앞에서 한국의 농민들은 전혀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다른 국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난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반박하고 싶지만 반박할 논리가 없음을 알기에 어금니를 꽉 물어야 했던 한 농민의 아들의 옆 얼굴 모습을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을 행하는 순수하고도 청결한 마음이 "악"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난 이때 부터 선의 동기로 행하고 말하는 사람들 보다 "돈"과 "이득"의 논리로 말하는 사람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무섭고도 불편한 진실이었다. 새로운 지식 앞에 환희를 느끼면서도 마음속 찜찜함을 벗을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에 의존해 잘도 굴러가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힘없는 불만이었는 지도 모른다.

       

  2. 죄수의 딜레마

    그러나 개개인의 바른 선택이 사회적으로 반드시 옳은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사실은 굉장히 오래된 이론인 죄수의 딜레마에서 찾을 수 있다.

  

죄수 B의 침묵

죄수 B의 자백

죄수 A의 침묵

죄수 A, B각자 6개월씩 복역

죄수 A 10년 복역, 죄수 B 석방

죄수 A의 자백

죄수 A 석방, 죄수 B 10년 복역

죄수 A, B각각 5씩 복역

위와 같은 상황에서 죄수 A와 죄수 B가 취해야 하는 선택은 무엇인가? 죄수 A의 입장에서 보자. 만약 죄수 B가 침묵한다면 죄수 A에게 있어 더 나은 선택은 자백하는 것이다. 만약 죄수 B가 자백한다면? 역시 죄수 A의 입장에서 자백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는 B에게도 마찬가지 이므로 머리좋은 두 녀석을 위 상황에 붙여 놓으면 100이면 100 서로 자백하게끔 된다. 서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 어떻게 하면 죄수 A와 B는 이 문제를 타결할 수 있을까? 의리와 인정에 기대서? 자백하는 놈은 의리없는 놈, 나쁜 놈? 조폭들이 매번 배신하는 것을 봤지? 정에 호소하면 안된다. 악함에 호소해야지. 이렇게 하면 어떨까? 보스가 자백하는 죄수의 가족을 해치기로 했다면? 절대 자백하지 않겠지?"

   

Outtro.

제길, 이렇게 잘도 굴러가는 세상은 나쁜 사마리아 인의 세상이다. 물론 책에서 나쁜 사마리아인이라 함은 거짓말을 일삼는 강대국을 일컫는 말이지만 굳이 강대국에 한정시키지 말자. 우리 모두가 나쁜 사마리아 인이 아니던가. 겉으로는 "positive-sum" 싸움이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서로들 "zero-sum"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들, 아니 성급히 일반화하지 말자. 적어도 내가 나쁜 사마리아 인이 아니던가.

과연 해법은 없는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욕하면서 자신은 나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현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재간이 있는가. 사다리를 차고 싶어도 찰 사다리가 없음에 분노하는 이 상황을 벗어나 너도 좋고, 나도 좋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나에게 최선인 일이 사회와 우주에게도 최선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책 속에는 잠시 지나가는 이야기이지만 난 간절히 거기에 집중하고 싶다.

"더 나아가 나쁜 사마리아인 행세를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부자 나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명백하게 입증하는 사례가 있다. 그 가장 큰 예는 마셜플랜이다. 이것은 과거의 적국들까지 포함한 다른 나라의 번영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본다는 신호였던 것이다. 이러한 깨인 전략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겪게 했다."

오호라, 남을 돕는 것으로 너도 좋고 나도 좋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가?

  

선택 1

선택 2

A집단

5

3

B집단

-2

5

위와 같은 선택지가 있다고 하고, 선택권이 A집단에게 있다고 했을 때 A집단은 당연히 1을 선택 하게 된다. 이 때 A집단에게 왜 2를 선택 하지 않냐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혹시 판을 잘못 보고 있는게 아닐까?

  

선택 1

선택 2

A 집단

5

7

B 집단

-2

10

현재의 판은 이와 같지 않을까? 2라는 선택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B가 더 큰 이득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에 계속 1을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의 역이다.

'이런 귀염둥이들,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줄께, 이게 정답이야,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그 때 난 어렸다. 그들이 보여준 세상에 내 이기심을 올려 태웠다. 그러나 이제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이건 내가 만들어낸 잘못된 시험지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프로 그려진 정의도 없고 미분과 적분으로 치장된 수식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험지가 옳다고 믿고 싶다. 이 새 시험지를 들고 과감히 2번을 선택하고 싶다. 그래,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 선택은 감히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왜냐면 이 모든 것들은 바로 나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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