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탐정 김전일과 성급한 일반화.

끄적끄적 2011.03.13 12:47 Posted by 아일레프

소년 탐정 김전일을 보면 위와 비슷한 상황을 몇번 만날 수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가지 수수께끼에 의해 그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그리고 김전일과 또다른 누군가가 이사건의 해결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된다. 이때 먼저 해답을 얻었다며 범인을 지목하는 이는 김전일이 아닌 김전일의 경쟁자이다. 그 김전일의 경쟁자는 자신의 풀이 과정을 조리있게 설명하며 자신이 승리자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승리자인 그가 발표의 장에서 나가면 김전일의 친구 중 한명이 김전일에게 묻는다.

"김전일, 저 사실을 몰랐던 거야?"

김전일은 대답한다.

"아니. 알고 있었어. 하지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남아있어"

...

...

...

안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현상을 그보다 적은 규칙과 도식으로 일반화하고, 추상화 한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서 하이젠베르크의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즉 다양성을 일반적인 간단한 것에 귀착시키는 일, 바로 자네가 좋아하는 그리스 인식으로 말하면 '많은 것'을 '하나'에다 소급시키는 일을 우리는 '이해'하였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 볼프강 파울리

추론이라고 번역되는 deduction이란 단어에 공제, 삭제의 의미가 함께 들어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등 과거의 과학자들이 위대한 이유는 이 복잡한 세상을 그 이론의 폐구간 안에서 모든 것을 명료히 설명하는 규칙과 질서를 발견했다는 것일테다. 우린 그러한 과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세계를 설명하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어떤 객체들의 특징을 어떻게든 정리해 우리의 언어 내에서 주어와 술어로 표현한 후, 스스로 앎을 얻었다는 확신 속에서 평안한 안식을 얻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이해하고 싶다. 앎을 얻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일까? 우린 적은 사례들의 표본만을 가지고 전체의 규칙을 일반화하기 쉽상이다. 그런데 그 결론을 얻기까지의 과정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침착한 이성의 눈으로 바라본 설득력있고 명백한 증거들이 아니라, 의식 혹은 무의식의 저변에 깔려있는 과거 자신만의 어떤 '경험'이라는 사실을 난 부인하기 어렵다. 이 선행된 경험의 힘이 얼마나 오묘하고도 강한지, 그 경험을 뒤엎고도 남을 만한 다른 경험들이 이미 높은 자리를 차지한 선행 경험의 힘을 이겨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배의 충격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과 누구보다 먼저 빠르게 답을 내리려는 경쟁심리가 우리로 하여금 성급히 "~은 ~이다"라고 말하게 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게 한다.

김전일이 훌륭한 이유는 한층 더 깊은 수읽기로 남들이 보지 못한, 수수께끼 이면의 다른 수수께끼를 발견한다는 것과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규칙을 발견할 때까지 앎으로 부터 오는 안식의 순간을 끊임없이 지연시킨다는 점에 있다. 우린 이러한 김전일의 자세와 끈기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섣불리 "~은 ~때문에 ~이다" 라고 말하기 이전에 김전일의 눈빛과 표정을 흉내내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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