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 10점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B – 이게 끝이 아니라니?

A – 이봐, 사람은, 아니 나란 사람은 죄책감을 가지고서는 더 이상 가슴을 펴고, 얼굴에 웃음을 가진 채 결코 살 수 없는 거야. 결국 그것을 극복하거나 버려야하네. 그 간극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던 것 같아. ‘보았네’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같아’라고 말한 것은 내가 그 때에는 나의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돌아가는 어떠한 현상 자체를 완전히 몰랐기 때문이야. 지금 그 사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내가 했던 행동들과 내가 한 선택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고.

B – 그래,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A – … 말하겠네. 기독교를 믿는 나는 마치 내가 그녀를 지옥에 버려두고 온 것처럼 느껴졌었네. 그리고 나는 그녀를 그 지옥에서 이 곳으로 다시 데려올 수도 있었고, 그냥 둘 수도 있었네. 그런데 내 머리 속에서 명확한 사실이 내게 말을 걸었다네.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결국 나는 그냥 두는 쪽을 선택해야만 했어. 그런데 또 갈림길에서 서 있었지. 하나는 내가 명백하게 그 사실, 내가 그녀를 버려둔 채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 ‘마음’의 선생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그 사실로부터 완전히 도피 할 것인지 선택 해야 하는 그 길목이었어.

B – 거기서 도피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인가?

A – 그래, 그런데 지금 와서 소름 끼치는 것은, 내가 거기서 도피했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니야.

B – 젠장, 그럼 뭐란 말인가?

A – 화내지 말게나, 내가 소름 끼쳤던 것은, 도피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내 머리 속에서 저절로 동작한 그 어떤 것 이었어. 난 결코 쉽게 도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길을 택해야 했던 거야.

B – 그래 그게 뭐냐고.

A – 그것은, 내가 어느 순간 ‘만인 구원설’이란 것을 믿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야. 믿기 시작했던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다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가면서. 난 그게 옳은 결론인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난 그것 – 하나님이 믿는 자와 불신자를 모두 구원해 준다는 설–을 믿음으로써 그제서야 그 ‘죄책감’ 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 돌파구를 찾은 후에야 난 다시 웃을 수 있었고, 내 삶에는 다시 행복이라는 글귀가 써지기 시작했네.

B – 별 시덥잖은 얘기를 하고 있구만. 그런데 그게 도대체 이 책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A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말 모르겠나? 사람이란 그런거야. 자신 안에 숨어있는 죄책을 버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가져온, 마음 한구석에 가장 높고도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은 그 믿음과 신념을 다른 것으로 변형할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네. 30년이 넘게 그 죄책을 가지고 있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네. 당신은 그 선생이 ‘자기애’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라고 했지만 자기애로 뭉쳐진 사람은 그런 짓을 하지 못해. 죄책이라는 것을 가슴에 두고 살 수 없다고.

B – 그렇군. 자네가 왜 감동을 느꼈는지 알겠어. 하지만 말이야, 그 죄책이라는 것을 버린다는 것과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이렇게 생각해보게. 사람은 삶을 살아야해. 그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고. 남들을 용서해야 하고, 자신을 용서해야하고, 남들을 사랑해야하고, 자신을 사랑해야하네. 어쨌던 간에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이봐, 그 선생이 마지막에 취한 행동을 생각해봐 죄책을 가슴에 꽁꽁 숨겨두고 30여년을 지내온 그 과정과, 그 결과가 무엇이었냐고? 그 사람은 살아간 적이 없어. 세월을 좀먹고 있었을 뿐이야. 결국에는 결말이 어땠는가? 마누라를 홀로 두고 자살하는 것 밖에 없지 않았나? 그것은 찌질이의 인생이야.

A – 부탁인데, 찌질이라고 말하지 말게나.

B – 이 사람, 너무 몰입했구만. 그렇게 얼굴을 붉히지 말게.

A – 좋아, 그렇다면 쿨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살아온 뒷길에 난 그 발자국을 쉽게 잊어버리고, 내일을 위해서만 터벅 터벅 걷고, 빠르게 뛰어가는 그것이 쿨하다는 것인가? 이봐 우리네 삶은 중요한 것을 몰라. 너무 빨리 깨닫고, 너무 빨리 움직이고, 그리고 너무 빠르게 배우고 있어. 너무 빠르게 용서하고 있고, 너무 빠르게 사랑하고, 금새 회복하지. 그것이 쿨하다는 것의 가치인가? 우리는 놓치고 있어. 살아가기위해서, 아니 좀더 효율성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아름답고 곱씹어야 할 인생길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쳐버리고 있다고. 이봐, 내 삶에 후회되는 것 중 몇 가지 중 하나가 뭔지 아는가?

B – 무엇인가?

A – 고등학교때 빠르게 언어영역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그 커다란 윤동주 시의 감동을 ‘정답’으로 외웠다는 것이네.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아. 그 선생을 그려놓은 그 소설이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면 거기에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야. 우리들이 말하는 그 정답대로 살지 않은 사람의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어.

B – 재미있군. 그러나 자네는 그렇게 살 수 있는가? 자네가 생각하는 그 ‘쿨’함의 가치를 벗어던지고 살 수있겠나? 아니, 내가 아는 자네는 그렇지 않아.

A – 나도 알아.

B – 그래. 나도 자네가 그것을 알고 있을 것 같았어. 그렇다면 굳이 과거의 죄책을 끄집어 내서 그것과 다시 씨름하지 말게나. 그것을 끄집어 낸다고 해도 자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이렇게 나 같은 사람과 얘기하는 것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절대 나오지 않도록 숨겨버리게.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꺼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말하지도 말게. 말하는 순간 자네의 죄책은 더 이상 죄책이 아니라 단지 유희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자네의 죄책을 숨기는 것보다 꺼낸 후에 이런 식으로 모독하는 것이 더 나빠.

A – 대단하군. 언제부터 이렇게 가슴을 찌르는 말을 할 수 있었나?

B – 그걸 모르나? 바로 자네한테 배웠다네. 하여간 책은 잘 봤어.

A – … 그래. 다행이야.

B – 다행이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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