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꿈

가상의 이야기 2011.01.18 23:13 Posted by 아일레프

잘 지내시지요? 전 당신이 들려주는 목소리로 늘 하루를 마감합니다. 적고 나니 굉장히 낮 뜨거운 문장이군요. 사연은 이래요. 언젠가 2주일간 원인 없는 불면증에 시달렸어요.(원인이 없다는 것에 참 기가 막혀요.) 생전 처음 수면제를 먹어봤어요. 하지만 별로 효험이 없더군요. 그렇게 힘들게 하루를 보내다 아이폰을 사게 되었고 그 안에 불면증 치료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Itunes U에 여럿 존재하는 영어 강의가 그것이었어요. 예, 원인 없는 불면증 정도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집중해 들으면 치유되는 법이지요. 그 후 잠을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불면증은 멀리로 갔지요. 그리고 마침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들으며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당신의 팟케스트로 당신이  책 읽어 주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르 잠들게 있게 된거에요.(물론, 에피소드 하나를 끝까지 들은 적은 없습니다. 늘 잠이 에피소드의 마지막을 알리는 음악 소리보다 먼저 찾아오거든요) 이렇게 당신의 목소리는 내 하루의 끝자리에서 잠의 시작을 준비하는 고요한 음성이 되어주었답니다.

 

그런데 삶이 쉽나요? 당신의 목소리로도, Itunes U의 영어강의도 치료해줄 수 없는 원인 있는 불면증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만나지 못한 풍경에 취했고 매일 매일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어요. 그것은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우리는 풍경에서 빠져나와 문을 닫아버렸어요. . 물론 사건이 있었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네요. 물론 아쉬움이 남지만 그에게 문을 다시 열어보자며 매달리진 않을거에요. 남자란 매달리는 여자에게 자신의 닫힌 문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든요. 어머니에게 늘상 들어서 알아요.

 

"남자에게는 '전부'주면 안된단다. 종자들은 모든 것을 가졌다 싶으면 냉큼 도망가 버리거든. 지혜로와야 된다. 조금 사랑하고 현명해야된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어요. 그렇다면 상황에서 현명해져야할 필요가 있죠. 그와 나의 관계는 이미 닫힌 문이 되었고 우린 문의 열쇠를  강바닥에 던져버렸어요. 물론 찾을 수도 있겠죠. 혹시 몰라요. 강물에 발을 담그자 마자 열쇠가 밑에 있을지도. 그런데 현명한 여자에요. 작은 확률에 마음을 담아 잠시 뒤에 찾아올 절망을 짊어지는 실수는 하지 않을거에요. 또한 그가 어느날 마음을 돌려 강에서 열쇠를 힘겹게 찾아 나를 앞으로 이끈다고 해도 기분좋게 거절할거에요. 지나간 것은 돌릴 없거든요. 풍경은 이미 지나갔어요.

 

그는 기억 속에서 점점 쪼그라들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추해졌지만 풍경의 기억만은 선명해지독한 불면증을 남겼고,  불면증은 당신에게로 깊이 다가가게 했어요. 당신의 팟케스트 하나의 에피소드도 전부 들을 수 없었던 제가 에피소드 3개를 듣고도 잠이 오지 않아 멀뚱 멀뚱 천장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된거에요. 어쩌면 불면은 다행인지도 몰라요. 당신의 팟케스트가 정말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거든요. 내 몸의 머리 부터 끝까지 불어오는 찬바람에 가슴이 저며와도 귀만은 당신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내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온것이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그러나 당신의 팟케스트를 듣는 것보다 난 자고 싶어요. 난 잠을 사랑해요. 잠이 있어야 내일 삶을 시작할 수 있고 잠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거든요. 그리고 운이 좋으면 꿈속에서 풍경을 다시 수도 있지요.

 

어제는 9시에 집에 왔어요.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를 떨며 술을 거하게 먹었던 장소에 정신을 두고 왔기에 난 잠들 수 있을거라며 기뻐했고, 그 기쁨이 헛되지 않게 잠이 들었답니다. 그런데, 삶이 그리 쉽나요? 난 꿈을 꾸었어요. 아나콘다가 호랑이에게 시비를 걸어 아나콘다에게 유리한 아마존의 강가에서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지요. 아나콘다는 기세 등등하게 호랑이의 몸을 졸라 죽이려 했지만 호랑이는 날렵하게 몸을 돌려 아나콘다의 목을 물었고, 그 영향으로 난 잠에서 깼습니다. 새벽 두시더군요. 그리고 다시 불면이 찾아왔습니다. 당신과 만날 시간이 온거에요.

 

레이몬드 카버의 이야기는… 오, 훌륭했습니다. 이적의 목소리도 멋졌지요. 그 뿐인가요? 로알드 달의 그 웃기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요. 하지만 가장 압권은 역시 밀로라드 파비치의 "카자르 사전"이었습니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며, 마지막 그 아름다운 음악이라니. 난 용기를 얻어 다시 잠을 청했어요. 역시나 잠이 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쓰기 시작했어요. 잠을 자기위해 쓰기 시작했어요.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이며 감정이며 마구 마구 토해 내며 펜을 휘갈겼어요. 글이란 것이 이렇게 고통을 잊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철저한 나만을 위한 글쓰기가 이런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 토해내고 나니 잠이 오더군요.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신이 내 삶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어느 날 고향에 갔어요. 집의 인테리어가 많이 변했더군요. 사방이 온통 책이었어요. 이게 뭐냐고 어머니에게 물었어요.

 

"이게 다 뭐에요?"

"이번에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하려고 인테리어를 했단다."

"참 비싼 인테리어군요, 우리 집에 책 읽는 사람은 전혀 없잖아요. 왜 이런 짓을 했어요?"

"나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김영하란 작가가 이벤트를 하길래 냉큼 신청했어. 그 사람이 자기 서재의 모든 것들을 2주일간 빌려준다고 했단다."

"공짜로요?"

"아니, 400만원."

"400만원이요? 말도 안돼! 그게 무슨 이벤트야! 이런 사기꾼 같으니!"

"그러지 마라.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더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해놓고선 방에서 나갔어요. 난 멍하니 방을 살폈죠. 난 쌓여진 책들의 기에 눌렸지만 침착히 책장에 다가가 책 하나를 꺼냈어요. "돈키호테 3"이었어요. 돈키호테는 2 까지 있는 줄 알았는데 3이 있더군요. 그런데 책을 펼치니 사진 한 장이 펄럭 거리며 바닥에 떨어졌어요. 그 사진을 주워  살펴보니 그와 당신이 어깨 동무를 채로 그곳에 있더군요. 당신과 그는 아는 사이였던 건가요?  . 기가 막힐 일이에요. 당신과 그는 한패였어요. 그와 어떤 작당을 한거죠? 그와 당신은 새로운 풍경안에서 기뻐하는 나를 보며 실소를 입에 품었겠군요.  훌륭한 계획이에요. 풍경을 가져감으로써 불면증을 선사하고 이제 불면증으로 당신에게 묶여있게 하다니. 책장 앞에서 오랜 시간을 울어야 했어요. 그리고 시간으로 돌아왔어요.


... 


이제 알겠나요? 당신은 내 삶에 개입했어요. 난 당신이 내게 들려준 카자르 사전의 두번째 이야기를 기억해요. 꿈은 자리에 남아 균열을 선사합니다. 난 당신의 꿈으로 시작되어 나의 삶을 지나쳐가는 균열을 당신에게로 기꺼이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두렵지 않나요?

 

미안해요. 당신을 두렵게 만들 생각은 없어요. 꿈의 감정 처럼 당신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요.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줘요. 당신과 그가 그린 시나리오는 끝이 나빴지만 과정에서 보여지는 풍경은 정말 훌륭했어요. 다시 한번 이야기를 만들어줘요. 그것보다 아름다운 광경을 내게 보여줘요. 이전의 그가 힘들다면 다른 배우도 괜찮아요. 사실 그는 중요치 않아요. 풍경이면 족해요. 이번에 당신은 있어요. 이전에는 당신과 둘만이라서 실패했던거에요. 이번엔 나도 함께에요. 그리고 잘할거에요. 헛된 실수는 하지 않을거에요. 우리 같이 한번 만들어봐요.  당신의 이야기의 끝이 이번과 같이 새드엔딩이라도 괜찮아. 다시 불면증에 걸릴 것이고 불면증은 다시 당신에게로 이끌것이니까.  




-- 처음 글이 머리 속에서 나왔을 그녀는 "그와의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내요, 헤어진 사람이 다시 만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진부한 이야기를 써줘요" 김영하에게 청하지만 지금은 풍경이면 족하다고 한다. 결말이 현실에 가깝기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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