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판타지를 내게 보여라. 세 얼간이

끄적끄적 2011.04.06 20:50 Posted by 아일레프

'세 얼간이'는 코미디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긴 러닝 타임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만 평한다면 내게 불만을 가질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현재 이 영화의 네이버 평점은 놀랍게도 9.45이다. 한국 영화, 헐리웃 영화도 아닌 인도영화가 9.45란 평점을 기록한 것은 아마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리뷰를 보니 감동스러웠다는 의견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가 그렇게 원하는 감동과 재미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결코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 일단 너무 단편적인 캐릭터로 일관한다. 주인공 란초는 가히 '신'급이며, 악역을 맡고 있는 캐릭터들은 너무 찌질하며 못났다. 바름과 그릇됨. 선과 악. 좋음과 나쁨. 이렇게 이분법적인 극단의 캐릭터들로 이루어진 영화는 현실을 바르게 보여주지 못한다. 맞다. 동물이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이 마법을 부리는 장면이 꼭 나와야 판타지가 아니다. 이 영화는 판타지다. 현실에선 존재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너무나 원하는 장면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판타지다.

그런데 판타지란것이 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판타지가 내가 원하는 판타지가 아님을 종국에 가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장면. 판타지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이 영화는 '성공'이란 단어를 삽입함으로 판타지의 한 가운데에 가혹한 현실을 집어 넣어버렸다. 결국 대전제는 '성공'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것으로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육이 결국 성공으로 가는 보다 편하고 좋은 길임을 보여주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좋아, 이것만으로는 괜찮을 수도 있다. 개개인이 판단하는 '성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만의 성공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고 성공을 곧 부와 명예로 인식 하도록 끊임없이 강요받고 있다. 이 흐름은 학교, 회사를 막론하고 종교 단체(망할…), 심지어 서점에서도 바로 목격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본래의 목적을 지워버리고 "성공"을 억지로 끼워넣는 만행이다. "고전으로 리딩하라"는 전 세계 0.1%의 부자는 인문 고전을 읽고 있다고 말하며 고전 읽기의 동기부여를 위해 성공을 끌어들인다. 이건 양반이다. 책의 본 메시지를 가려버리는 책 제목과 책 날개를 버젖이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아웃라이어를 보라.) 심지어 지하철의 도인들도 더 이상 "도를 믿으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이젠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 젠장. 한국은 성공에 너무 미쳐있다. 이 영화도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론만 차이가 있을 뿐 그 '미침'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성공은 이 사회가 강요하는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여기서 난 감독의 상상력의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정말 간절히 묻고 싶다. 우리에겐 '성공'이 아닌 다른 그 무언가를 삶의 목적으로 둘 수 있는 상상력이 없는가? 좋아, 이게 없다면 다른 '성공'을 그릴 상상력이 없는가? 젠장, 란초는, 란초는 성공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다. 성공하더라도 다른 '성공' 이면 더 좋을 뻔 했다.

후.. 잠시 숨좀 고르고…

좋다. 현 자본주의 사회의 그 특성상 개개인은 자신도 모르게 '성공'을 자신의 목표로 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부정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 '효율성'이란 단어가 점점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한국이란 나라에선 그 효율적인 방법이란 것이 그다지 정의롭게 느껴지지 않음으로 우리가 어렸을 때 교육받아온 도덕관과 충돌하게 되고, 만약 그것에서 비롯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면 한 개인은 어느새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극단으로 치닫으면 부당거래와 같은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도덕과 성공이란 서로의 가치가 양갈래로 갈라져 있기에 이런 현상은 생각보다 자주 나타날 수 있다.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노력해라, 노력하면 보답받을 거야” 라고 하지만,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지 않은 이유는 본인들 삶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잔뜩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것도 모르고 “노력하자, 노력하면 보답받지 못할 일은 없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자라 버리면, 어른이 되고 나서 자기를 차고 월급을 더 많이 받는 남자와 결혼해 버린 옛 애인을 죽여서는 보스턴백에 쑤셔 넣어 내다버리는 전개가 되는 거다. -- 마야베 미유키 "우리 이웃의 범죄" 중

A는 어떤 영화에 깊은 감동을 받아 그 영화의 주인공 처럼 살기로 작정한다. A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머리 속으로 '알이즈 웰'을 외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하지만 자신이 그 영화의 주인공 만큼의 재능이 없음을 알게되고, 스스로가 가는 이 길이 1등이 아니면 모두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임을 완벽히 확인한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목숨을 끊으리라 다짐했다. --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미래의 일.

이런 비극들에 대한 비판이 시스템과 사회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가? 사회는 늘상 란초와 같은 예외 인물의 사례를 보편인양 제시하고 이 문제를 오직 개인만의 것으로 수렴시킴으로 문제는 사회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라 말한다.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세요" - 지그 제글러

천만에, 이것은 나의 잘못만이 아니다. 시스템과 체제를 탓하겠다. 우리에겐 필요 이상의 무거운 짐이 주어져 있다. 내가 원하지도 않은 삶의 형태로 나 스스로를 옥죄여 간것은 오직 내가 나이기 때문만은 아니요, 이 체제와 시스템에도 원인이 있다. 그럼으로 오직 개인의 '란초되기' 그것으로 '성공하기' 란 메시지를 전해오는 이 영화에 난 반대다. 이런 삶은 현실만으로 족하다. 지끔껏 만나지 못했으나 우리 모두가 속으로 꿈꿔온 다른 판타지를 내게 보여라. 다른 목적지에 불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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